- 20–40 분
주요 볼거리
- 백제식 1탑 1금당 가람 배치를 처음 확인한 절터
- 목탑 자리에서 나온 석조여래좌상과 금동보살입상
- 일본 칠지도와 닮은 일곱 날 칼
- 돌 대신 기와를 쌓은 금당·목탑 기단
- 2022년 위치가 확인된 중문터, 궁남지에서 약 550m
장소 소개
부여 궁남지에서 걸어서 닿는 거리의 너른 잔디밭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백제 절의 터가 있어요. 1935~1936년 발굴에서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 일직선으로 늘어선 백제식 '1탑 1금당' 배치가 처음으로 확인된 곳이고, 목탑 자리 땅속에서는 백제 불상과 칠지도 모양의 칼이 나왔어요.
백제 절의 설계도를 처음 보여 준 곳
절은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에 도읍하던 6세기 중엽 무렵 세운 것으로 짐작해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처음 조사됐는데, 이때 남쪽부터 중문·목탑·금당·강당이 한 줄로 놓인 구조가 드러나면서 백제 사찰 배치를 처음으로 밝힌 절터가 됐어요. 금당 좌우와 강당 좌우에도 건물터가 확인됐고, 강당 양옆 건물은 종루와 경장으로 추정해요.
그 뒤 2005~2007년과 2011년 다시 발굴했고, 2022년 조사에서는 목탑터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곳에서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가 나오면서 그동안 짐작만 하던 중문터의 정확한 위치가 확인됐어요. 절터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땅속에서 나온 것들
- 불상: 목탑 중심부 땅속에서 석조여래좌상과 금동보살입상이 나왔어요. 둘 다 백제 불상 연구에 빠지지 않는 국가유산이에요.
- 칠지도 모양의 칼: 가운데 칼날 양쪽으로 가지가 셋씩 뻗은 일곱 날 칼이에요. 이와 비슷한 백제 칠지도가 일본에 전해 백제와 왜의 교류를 보여 주는 자료로 꼽혀요.
- 기와 기단: 금당과 목탑의 기단을 돌 대신 기와를 쌓아 만든 점이 특징이에요. 반대로 중문과 남쪽 회랑은 돌로 기단을 쌓았어요.
- 장신구: 금당 주변과 탑터에서 옥 약 1,150점, 금동 방울, 연꽃·덩굴무늬 벽돌, 금 고리가 쏟아져 나왔어요.
발굴이 남긴 이야기
처음 발굴은 일본인 학자 이시다 모사쿠가 맡았어요. 그는 이 절을 일본 고대 사찰과 연결 지어 해석하려 했는데, 이런 식민지 시기 연구는 뒷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시각이 깔려 있었다는 비판을 받았어요. 그래서 2000년대 이후의 재발굴은 절의 정확한 규모와 배치를 우리 손으로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어요.
새로 밝혀진 사실도 많아요. 중문 기단은 동서 길이가 약 14m로 추정되고, 남쪽 회랑은 중문보다 좁은 기단으로 동쪽으로 약 10m 이어졌어요. 중문 모서리에는 'ㄱ'자로 다듬은 지대석 위에 기둥돌과 덮개돌을 올린 가구식 기단을 썼어요. 중문과 회랑의 서쪽은 절이 버려진 뒤 백제 사람들이 남북으로 낸 길 때문에 크게 부서져 있었는데, 사비 도성 안에서 절터 위로 새 길이 났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에요. 강당터 남쪽에서는 금동관 조각도 나왔어요.
Tripto 팁
- 현장 모습: 지금은 건물이 하나도 없고, 잔디밭에 건물터 자리와 안내판이 놓여 있어요. 안내판의 배치도를 보며 탑과 금당 자리를 하나씩 짚어 보는 게 이곳을 즐기는 방법이에요.
- 시간: 20~30분이면 충분해요.
- 함께 가기: 궁남지에서 약 550m라 연꽃 철 궁남지 산책과 묶기 좋고, 정림사지와 부소산성도 같은 부여 읍내에 있어요.
- 여름: 소나무 몇 그루를 빼면 그늘이 거의 없어요.
방문 계획
오시는 길
길찾기방문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