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시간
주요 볼거리
- 백제 부흥운동의 마지막 거점
- 둘레 약 2.45km의 테뫼식 돌 성벽
- 성 안쪽 폭 7~8m 내호와 남문 터
- 성벽 아래 판석을 덮은 배수구
- 예당저수지와 예당평야 전망
장소 소개
예산 대흥면 봉수산 꼭대기를 두르는 임존성은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운동의 마지막 거점이 된 산성이에요. 둘레 약 2.45km로 백제 산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꼽히고, 성벽 위에 서면 예당저수지와 예당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무너지지 않던 성
660년 나당 연합군에 사비성이 함락되자, 백제 장수 흑치상지는 임존성으로 들어와 부흥군을 일으켰어요. 기록에는 열흘 만에 3만 명이 모였다고 해요. 귀실복신과 승려 도침이 이끄는 부흥군은 임존성과 주류성을 근거지로 삼아 싸웠고, 신라군은 그해 8월 임존성을 공격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663년 백강 전투로 부흥군 주력이 무너진 뒤에도 지수신이 지키는 임존성은 신라군의 공격을 30일 동안 버텨 냈어요. 험한 산세와 단단한 성벽, 넉넉한 식량 덕분이었어요. 결국 성을 함락한 것은 당나라에 항복한 옛 부흥군 장수 흑치상지였어요. 지수신이 고구려로 망명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막을 내렸어요. 한때 성을 지킨 장수가 성을 무너뜨렸다는 점이 이 성의 이야기를 더 씁쓸하게 해요.
그 뒤의 임존성
임존성은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에 '임사기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나오고, 백제가 다섯 지방을 나눠 다스릴 때 서쪽 지방을 맡은 서방성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통일신라 경덕왕 때 이 일대는 임성군이 됐고, 신라 말 후백제 땅이 됐다가 925년 고려 장수 유금필에게 함락됐어요. 이때 후백제 장수 형적 등 3천여 명이 죽거나 사로잡혔다고 해요. 고려 초 대흥군으로 이름이 바뀌며 지금의 '대흥'이라는 지명이 생겼어요. 성 안에 큰 우물을 두고 적이 오면 물을 터서 쏟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조선 시대 기록에는 성 안에 우물이나 샘이 없다고 적혀 있어서 자료에 따라 내용이 달라요.
무엇을 볼까
- 돌로 쌓은 성벽: 산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돌과 흙을 섞어 쌓았어요. 남쪽 성벽은 돌이 잘 남아 있어 성의 규모를 실감할 수 있어요.
- 성 안쪽 해자: 성벽 안쪽을 따라 폭 7~8m의 도랑(내호)이 둘러져 있어요.
- 남문 터: 동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폭 2.3m의 성문 흔적과 네모난 옹성을 두었던 자리가 남아 있어요.
- 배수구: 성벽 아래로 폭 70cm, 높이 90cm의 배수구를 내고 판석을 덮었어요. 성벽을 걷다 낮은 구멍을 찾아보세요.
- 두꺼운 모서리: 성의 네 모서리는 다른 곳보다 약 2m 더 두껍게 쌓아 방어를 강화했어요.
Tripto 팁
- 가는 법: 광시면 쪽에서 성 아래 주차장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어서, 주차장에서 성벽까지 짧게 걸어가면 돼요. 대흥면 쪽에서 걸어 오르면 산길 중간에 대련사가 있어요.
- 시간: 남쪽 성벽 일부만 걸으면 1시간, 성벽을 따라 크게 돌면 2시간 정도 잡으세요.
- 좋은 때: 시야가 맑은 가을이 가장 좋아요. 여름에는 성벽 주변 풀이 무성해서 긴 바지를 입는 편이 좋아요.
- 관람: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으로 연중 언제든 올라갈 수 있고 입장료는 없어요. 편의시설이 거의 없으니 물을 챙기세요.
- 함께 보기: 산 아래 예당저수지의 출렁다리와 호숫가 산책로를 함께 묶으면 반나절 일정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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