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0 분
주요 볼거리
- 1417년 쌓은 전라도 육군 총사령부
- 1,060m 성벽과 옹성을 갖춘 남문
- 하멜 일행이 머문 1656~1663년
- 빗살무늬 돌담과 하멜기념관
- 수령 800년 안팎의 성동리 은행나무
장소 소개
강진 병영면 들판 한가운데 길이 1,060m의 돌 성곽이 네모나게 둘러선 곳이 전라병영성이에요. 조선 1417년부터 1895년까지 약 500년 동안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 53주 6진의 육군을 지휘한 총사령부였어요.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 7년 가까이 머문 곳이라, 성 옆 하멜기념관과 함께 보면 이야기가 훨씬 풍성해져요.
전라도 육군의 심장
병영성은 태종 17년(1417)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쌓았어요. 이후 갑오개혁으로 제도가 바뀐 1895년까지 전라도와 제주도의 육군을 총괄하는 병마절도사가 이곳에 머물렀어요.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불에 탔고, 이듬해 새 제도에 따라 병영이 폐지되면서 성 안 건물은 모두 사라졌어요.
사적으로 지정될 무렵에는 성벽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97년 사적 지정 뒤 1998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높이 3.5m의 성벽과 남문, 동문을 다시 세웠어요. 성벽 바깥으로 둥글게 감싼 옹성이 남문을 지키고 있어, 적이 문으로 곧장 다가오지 못하게 만든 구조를 확인할 수 있어요.
하멜이 머문 7년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가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배를 탔다가 제주도에 표류한 선원들이었어요. 한양으로 옮겨졌던 일행은 다시 지방으로 보내졌고, 1656년부터 1663년까지 이곳 병영에서 지냈어요. 이들은 잡일을 하거나 나막신을 만들어 팔고, 춤을 추어 품삯을 받으며 살았고, 마을 사람들, 스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해요.
병영 마을에 남은 빗살무늬 돌담은 하멜 일행이 쌓는 법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조선의 나막신이 일본 것과 달리 네덜란드 나막신처럼 통나무를 파서 만든 모양이라, 이들이 전해 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어요.
1663년 일행은 여수 좌수영과 순천, 남원으로 나뉘어 옮겨졌고, 그중 7명이 1666년 여수에서 탈출에 성공해요. 하멜이 남긴 기록, 이른바 『하멜 표류기』는 조선의 모습을 서양에 처음 자세히 알린 책이 되었어요.
성 밖에서 함께 볼 것
- 하멜기념관: 하멜 일행의 표류와 조선 생활을 소개하는 기념관으로 2007년 문을 열었어요.
- 성동리 은행나무: 병영성에서 약 300m 떨어진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수령 800년 안팎의 은행나무예요. 높이 30m, 둘레 6.75m로, 하멜이 이 나무 아래서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이 나무로 만든 목침을 베고 잔 병마절도사가 병이 났다가 나무에 제사를 지내고 나았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음력 2월 15일 자정에 나무에 제사를 지내요.
- 병영성 홍교: 까치내에 놓인 무지개 모양 돌다리예요. 지금은 홍예 부분만 옛 모습을 지키고 있어요. 노비와 양반집 딸의 신분을 넘은 사랑, 그리고 높은 벼슬을 받고 돌아온 그들의 아들을 기념해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Tripto 팁
- 이용 정보: 성곽은 상시 개방이고 입장료와 주차비가 없어요. 하멜기념관은 09:00~17:00, 월요일 휴관이에요.
- 소요 시간: 성벽 한 바퀴와 남문, 하멜기념관, 은행나무까지 둘러보면 1~1.5시간이에요.
- 가는 길: 강진읍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0km 떨어져 있어 자가용이 가장 편해요.
- 사진: 남문과 옹성은 오후 햇빛을 받을 때 돌의 색이 잘 살아나요. 성벽 위 길에서 병영 들판과 마을 돌담길을 함께 내려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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