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0 분
주요 볼거리
- 1639년 세운 높이 3.95m의 대청황제공덕비
- 만주 문자·몽골 문자·한문이 함께 새겨진 비면
- 강물과 땅속에 묻혔다 다시 선 비석의 역사
- 2010년 옮긴 석촌호수 서호 언덕의 현재 위치
- 남한산성과 이어지는 병자호란 이야기
장소 소개
삼전도비는 1636년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뒤, 청 태종의 요구로 그의 '공덕'을 새겨 세운 비석이에요.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이고, 높이 3.95m, 폭 1.4m의 큰 비석이 거북 받침 위에 서 있어요. 지금은 석촌호수 서호 언덕에 있어, 롯데월드 바로 옆에서 조선의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마주하게 돼요.
역사: 삼전도의 항복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버티던 인조는 결국 성을 나와, 청군이 머물던 한강 가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 청 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라고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1639년(인조 17년) 이 비석이 세워졌어요.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제목 '대청황제공덕비'는 여이징이 썼어요. 훗날 송시열은 이경석이 이 비문을 지은 일을 문제 삼아 그를 공격하기도 했어요.
비석의 앞면에는 만주 문자와 몽골 문자, 뒷면에는 한문이 새겨져 있어요. 세 가지 글자로 거의 같은 내용을 적어 만주어와 몽골어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로 꼽혀요.
묻히고 다시 선 비석
비석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어요. 1895년 청일전쟁으로 청과의 관계가 끊기자 강물에 묻혔고, 일제강점기인 1913년 다시 세워졌어요. 광복 뒤에는 주민들이 땅속에 묻었다가 홍수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어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여러 번 자리를 옮기다가 1983년 송파구 석촌동으로 옮겨졌어요. 이후 고증을 거쳐 2010년 원래 비석이 서 있던 자리(지금은 석촌호수 물속)에서 약 30m 떨어진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다시 옮겼어요. 2007년에는 붉은 페인트로 낙서하는 훼손 사건도 있었어요.
무엇을 볼까
- 비석 앞면: 왼쪽과 오른쪽에 만주 문자와 몽골 문자가 나란히 새겨져 있어요. 한 비석에서 두 문자를 함께 볼 수 있는 드문 예예요.
- 뒷면의 한문 비문: 청 황제의 은혜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조선이 어떤 처지에서 이 글을 새겨야 했는지 생각하게 해요.
- 거북 받침(귀부): 비석을 받친 돌거북의 머리와 등 무늬가 잘 남아 있어요.
- 안내판: 비석 옆에 이전 경위와 병자호란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있어요.
전쟁에 이르기까지
조선 초기까지 조선에 조공하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흔들리는 틈을 타 후금을 세우고 힘을 키웠어요. 1627년 정묘호란으로 조선을 침략해 형제 관계를 맺게 했고,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뒤에는 조선에 신하의 예를 요구했어요.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1636년 청 태종은 약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쳐들어왔어요. 이것이 병자호란이에요.
'세 밭 나루'라는 뜻의 삼전도는 조선 초부터 한강을 건너는 주요 나루였던 삼밭나루 근처에 있었어요. 경기도 광주와 남쪽 지방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고, 태종의 능이 있는 대모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어요. 남한산성에서 가까운 이 나루터에 청군이 진을 쳤고, 인조는 이곳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올렸어요. 그래서 이 비석은 오랫동안 '치욕비'라고도 불렸어요.
Tripto 팁
- 위치: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서호 쪽 언덕에 있어요. 지하철 잠실역에서 석촌호수 산책로를 따라 걸어갈 수 있어요.
- 운영: 공원 안 야외에 있어 따로 입장료나 관람 시간이 없어요.
- 시간: 비석만 보면 20~30분이면 충분해요. 석촌호수 한 바퀴 산책과 함께 둘러보세요.
- 함께 둘러보기: 병자호란의 무대인 남한산성과 함께 보면 이야기가 이어지고, 가까운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는 백제 한성 시대 돌무지무덤을 볼 수 있어요.
방문 계획
오시는 길
길찾기방문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