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0 분
주요 볼거리
- 임진왜란 첫 전투와 정발 장군의 순절
- 일본군이 쌓은 자성대 왜성의 비스듬한 석축
- 1974년 복원한 서문 금루관과 장대 진남대
- ‘남요인후’·‘서문쇄약’ 돌기둥
- 조선통신사가 떠나던 영가대
장소 소개
부산 동구 범일동의 아파트와 시장 사이에 작은 언덕 하나가 숲으로 남아 있어요. 부산진성은 조선 수군이 지키던 성으로, 1592년 임진왜란의 첫 전투가 벌어진 곳과 깊이 이어져 있어요. 지금 언덕에 남은 성벽은 그 전쟁 때 일본군이 쌓은 성을 조선 수군이 고쳐 쓴 것이라, 한 언덕에서 두 나라의 성 쌓는 방식을 함께 볼 수 있어요.
역사: 두 번 쌓인 성
조선은 1407년 부산포를 열면서 왜인을 감시하려고 부산진에 군사를 두었어요. 1490년에는 지금의 증산 아래에 둘레 약 950m의 성을 쌓았는데, 이를 ‘전기 부산진성’이라고 불러요. 1592년 4월 일본군이 상륙하자 첨사 정발과 군사, 백성들이 끝까지 싸웠지만 성은 함락됐어요.
이듬해 일본군은 성을 허물고 증산 꼭대기에 본성을, 바닷가 언덕에 이를 지키는 지성(자성대 왜성)을 쌓았어요. 전쟁이 끝난 뒤 1607년 조선 수군은 이 지성으로 진영을 옮겨 고쳐 썼고, 이것이 지금 남은 ‘후기 부산진성’이에요. 당시 둘레는 약 2.4km에 동서남북 네 문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시가지 정비로 대부분 헐리고 주변 바다도 메워졌어요.
무엇을 볼까
- 서문 금루관: 공원의 주 출입구예요. 양옆에 ‘남요인후(南徼咽喉, 남쪽 변방의 목구멍)’와 ‘서문쇄약(西門鎖鑰, 서문의 자물쇠)’을 새긴 돌기둥이 서 있어요.
- 왜성 석축: 언덕을 감싼 성벽은 돌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쌓은 일본식이에요. 위아래 두 단이 남아 있고 높은 곳은 약 10m에 이르러요.
- 진남대와 동문: 1974~1975년 정비 때 동문 건춘문, 서문 금루관, 언덕 위 장대 진남대를 새로 지었어요.
- 천만리 장군 비와 최영 장군 비각: 임진왜란 때 온 명나라 장수 천만리를 기리는 비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른 최영 장군을 모신 비각이 있어요.
- 영가대: 1614년 바닷가에 세운 정자로, 조선통신사가 이곳에서 바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일본으로 떠났어요. 철도 공사로 사라졌다가 2003년 성 안에 다시 지었어요.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
오랫동안 이곳은 ‘자성대’로 불렸어요. 일본군의 본성을 어미 성, 이곳을 아들 성으로 본 데서 나온 이름이라 주민들이 바로잡기 운동을 벌였고, 문화유산 이름은 2020년 부산진성으로, 공원 이름은 2023년 1월 부산진성공원으로 바뀌었어요.
성 안에 있던 것들
조선 후기 부산진성에는 성벽 위 담장인 여첩이 483개 있었고, 동문 진동문, 서문 금루관, 남문 진남문, 북문 구장루 네 문루가 있었어요. 성 꼭대기에는 임진왜란 때 온 명나라 장수 만세덕을 기리는 만공단이 있었고, 서북쪽에는 객사인 공진관, 동남쪽에는 관아 건물들이 있었어요. 성 둘레에는 바닷물을 끌어들인 해자가 있어 배가 성벽 가까이 닿았다고 해요.
Tripto 팁
- 시간과 요금: 상시 개방, 입장료 없음이에요. 면적은 약 2.4만㎡로 아담해서 30분~1시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어요.
- 이렇게 보세요: 서문으로 들어가 언덕 위 진남대에 오른 뒤, 내려오는 길에 성벽 아래로 돌아가며 비스듬한 왜성 석축을 살펴보세요. 숲속 작은 도서관과 쉼터도 있어요.
- 함께 보기: 임진왜란의 기억을 더 따라가려면 정발 장군을 모신 정공단이 있는 좌천동 일대나, 부산 원도심의 다른 유적과 묶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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