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시간
주요 볼거리
- 1914년 화재에도 살아남은 1758년 2층 누각 대양루
- 1978년 사리 108과가 나온 적멸보궁과 사리탑
- 적멸보궁 뒤 언덕의 녹차밭과 반야로 차
- 한용운이 머물고 김동리가 「등신불」을 쓴 안심료
- 16구의 돌부처를 모신 보안암 석굴
장소 소개
사천 봉명산 동쪽 기슭, 소나무 숲길 끝에 자리한 다솔사는 신라 때 처음 세워졌다고 전하는 오래된 절이에요. 절 뒤편 언덕에는 녹차밭이 층층이 펼쳐지고, 일제강점기에는 한용운이 머물며 독립운동가들과 만났고 소설가 김동리가 대표작 「등신불」을 이곳에서 완성했어요. 큰 관광 사찰의 북적임 없이 차밭과 근대사 이야기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여러 번 불타고 다시 선 절
절의 기록은 503년 승려 연기가 세운 영악사에서 시작해요. 이후 자장, 의상, 도선을 거치며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고, 지금의 이름 ‘다솔(多率)’은 산세가 많은 군사를 거느린 대장군 같다는 데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임진왜란 때 불탄 절은 1686년 다시 지어졌지만 1748년 큰불로 대부분의 전각을 잃었고, 1758년 명부전, 사천왕문과 함께 대양루를 새로 세웠어요. 1914년 12월 화재 때 대양루만 살아남았고, 지금 보는 다른 전각들은 그 뒤에 다시 지은 것이에요.
한용운과 김동리, 그리고 차
다솔사가 근대사에 이름을 남긴 데는 최범술 스님의 역할이 커요. 1928년부터 1976년까지 주지를 맡은 그는 절에 강원과 광명학원을 세웠고, 비밀결사 만당의 중심이던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 자주 머물렀어요. 한용운은 회갑 잔치도 다솔사에서 치렀어요. 그가 지내던 요사채 안심료에서는 김동리가 광명학원 교사로 일하며 소설 「등신불」을 썼어요. 최범술은 차 문화를 되살리는 데도 힘을 쏟았고, 절 주변에서 기르는 죽로차는 반야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요.
무엇을 볼까
- 대양루: 경내 입구 쪽에 선 2층 누각으로, 앞면 5칸·옆면 4칸의 맞배지붕 건물이에요. 절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건물이며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이 됐어요.
- 적멸보궁과 사리탑: 1978년 2월 8일 대웅전 삼존불에 새로 금을 입히다가 후불탱화 뒤에서 사리 108과가 나왔어요. 이를 계기로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바꾸고 뒤편에 사리탑을 세웠어요.
- 극락전과 응진전: 아미타불과 나한을 모신 작은 전각들로, 1985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어요.
- 녹차밭: 절 뒤편 언덕을 따라 차나무가 줄지어 자라요. 차밭 위쪽에서는 절 지붕과 남쪽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와요.
- 안심료: 한용운과 김동리의 이야기가 깃든 요사채예요.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니 바깥에서 조용히 보세요.
조금 더 걸으면, 보안암 석굴
봉명산 자락에는 다솔사에 딸린 암자 보안암이 있어요. 돌을 쌓아 만든 석굴 안에 코가 깨진 석가모니 좌상과 작은 돌부처 16구가 모셔져 있어 경주 석굴암을 닮았다는 말을 들어요. 고려 말에 처음 지었다고 전하지만 불상 양식은 조선 시대로 보여요.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어요.
석굴 가까이에는 스님 다섯 분의 부도를 모은 부도군이 있고, 통일신라 때 것으로 여겨지는 닳은 마애불도 남아 있어요. 다솔사 본절의 아담한 전각들과 달리 산속 석굴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어, 걷기를 좋아한다면 한 번 다녀올 만해요.
Tripto 팁
- 좋은 때: 차나무 새순이 올라오는 4~5월과 단풍이 드는 가을이 가장 좋아요. 여름에는 소나무 숲 그늘 덕분에 한낮에도 걷기 편해요.
- 소요 시간: 경내와 차밭만 보면 1시간 안팎이에요. 산길을 걸어 보안암 석굴까지 다녀오려면 넉넉히 2~3시간을 잡으세요.
- 가는 길: 주소는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이에요. 절 아래에 주차장이 있어 자가용이 가장 편하고, 대중교통은 배차가 뜸하니 출발 전에 지도 앱에서 버스 시간을 꼭 확인하세요.
- 예절: 차밭과 요사채 주변은 스님들의 생활 공간과 이어져 있어요. 출입 금지 표시가 있는 곳에는 들어가지 마세요.
- 함께 가 볼 곳: 차로 30분 안팎 거리의 진주성과 묶으면 하루 일정이 알차져요.
방문 계획
오시는 길
길찾기연락처
방문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