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시간
주요 볼거리
- 1871년 신미양요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
- 성문 안해루와 대포를 재현한 광성돈대
- 바다로 튀어나온 용두돈대와 손돌목 전설
- 전사자를 기리는 신미순의총과 쌍충비각
- 어른 1,500원, 초지진·덕진진과 해안 코스
장소 소개
강화도 동쪽 해안,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좁은 물길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새예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과 조선군이 가장 치열하게 맞붙은 곳으로, 어재연 장군과 병사들이 낡은 무기로 끝까지 싸우다 대부분 전사했어요. 지금은 소나무 숲 사이로 성문과 돈대, 이름 없는 병사들의 무덤이 남아 조용히 그날을 전해요.
몽골 항쟁의 성벽에서 조선의 요새로
이 해안에는 고려가 몽골에 맞서 1233~1270년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을 때 쌓은 강화외성이 지나가요. 조선 광해군 때 이 성벽을 고쳐 쌓았고, 효종 때 처음 '보'라는 군사 기지를 두었어요. 그 해는 자료에 따라 1656년 또는 1658년으로 달라요. 숙종 때는 광성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용두돈대 같은 감시·포대 시설이 딸렸고, 1745년(영조 21년) 성을 돌로 다시 쌓으며 성문 안해루를 세웠어요. 1971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신미양요, 가장 치열했던 싸움
1871년 6월,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아시아 함대가 강화해협으로 들어왔어요. 수병 546명과 해병 105명이 남쪽 초지진에 상륙해 덕진진을 차례로 점령하고 광성보로 밀고 올라왔어요. 진무중군 어재연 장군이 지휘한 조선군은 화력에서 크게 밀렸지만 물러서지 않았고, 백병전 끝에 어재연과 동생 어재순을 비롯해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어요. 미군 쪽 기록으로 이 원정에서 숨진 조선군은 243명, 미군 전사자는 3명이었어요.
이때 미군은 어재연 장군의 지휘 깃발 **수자기(帥字旗)**를 빼앗아 갔어요.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던 이 깃발은 2007년 장기 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왔어요.
둘러볼 곳
- 안해루: 무지개 모양 돌문 위에 누각을 얹은 광성보의 성문이에요. 1745년 성을 돌로 다시 쌓을 때 세웠어요.
- 돈대와 대포: 둥글게 돌담을 두른 돈대 안에 조선 시대 대포를 재현해 놓았어요.
- 신미순의총: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자들을 함께 묻은 무덤으로, 봉분 일곱 기가 나란히 있어요.
- 쌍충비각: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에요.
-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 해협에서 물살이 가장 거센 '손돌목'을 내려다보는 돈대예요. 용두돈대는 용머리처럼 바다로 툭 튀어나온 바위 위에 있어서 해협 위아래가 다 보여요. 고려 왕이 피란 갈 때 배를 몰던 뱃사공 손돌을 의심해 죽였는데, 그 뒤로 이 물목을 손돌목이라 부른다는 전설이 있어요.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진지들
광성보는 병자호란 뒤 조선이 강화도 해안에 촘촘히 쌓은 강화 12진보 가운데 하나예요. 남쪽 초지진에서 덕진진, 광성보로 이어지는 해안은 1871년 미군이 차례로 공격해 올라온 길과 겹쳐서, 세 곳을 순서대로 걸으면 전투의 흐름이 그대로 그려져요.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이 이 해안 진지들을 잇고 있어 걸어서 돌아보기도 좋아요.
Tripto 팁
- 운영 시간: 09:00~18:00(입장 마감 17:00), 연중무휴예요.
- 입장료: 어른 1,5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 1,100원이고 주차는 무료예요.
- 소요 시간: 안해루에서 용두돈대까지 돌아보는 데 1시간 정도예요. 초지진, 덕진진까지 해안을 따라 묶으면 2~3시간이에요.
- 가는 길: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군내버스가 다니지만 배차 간격이 길어요. 진지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어 자가용이나 자전거가 편해요.
- 추천 시기: 소나무 숲길이 그늘을 만들어 여름에도 걷기 좋아요. 해 질 무렵 용두돈대에서 보는 해협 풍경이 특히 좋아요.
- 기념일: 매년 음력 4월 24일 오전 11시에 전사한 장병을 기리는 광성제가 열려요.
방문 계획
오시는 길
길찾기방문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