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5 분
주요 볼거리
- 《동명왕편》과 《동국이상국집》을 남긴 백운거사의 무덤
- 고려 양식 석인상과 석양 한 쌍
- 1919년 세운 묘비와 영정을 모신 유영각
- 고려 금속활자 기록을 남긴 문인의 이야기
- 전등사에서 약 4km
장소 소개
고려의 시인 이규보는 '시와 술과 거문고'를 사랑했고, 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바퀴 달린 정자를 고안할 만큼 엉뚱한 사람이었어요. 몽골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옮겨 왔을 때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고, 1241년 74세로 세상을 떠나 진강산 동쪽 기슭에 묻혔어요.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의 이규보 묘는 고려 문인의 무덤 가운데 드물게 위치가 분명히 전해지는 곳이에요.
백운거사 이규보
이규보(1168~1241)의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흰 구름처럼 매이지 않고 살겠다는 뜻이에요. 무신정권 시대에 태어나 진사시에 합격한 뒤 오랫동안 어렵게 지냈지만, 최씨 정권 아래에서 벼슬길이 열려 1237년 문하시랑평장사로 물러났어요. 옛 시구를 빌려 쓰기보다 자기만의 새로운 표현을 써야 한다는 '신의론'을 주장했고, 평생 수천 편의 시를 지어 지금도 2,000편 남짓이 전해요.
그의 글에는 고려사 연구에 꼭 필요한 기록이 많아요.
- 《동명왕편》: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이야기를 장편 서사시로 엮어, 고려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라는 자부심을 담았어요.
- 《동국이상국집》: 그의 문집으로, 왕과 최고 권력자가 직접 챙겨 나라의 기록물처럼 간행했어요. 권수는 자료에 따라 53권 또는 56권으로 달라요.
- 《상정예문》 발문: 이 책을 쇠로 부어 만든 활자(주자)로 찍었다고 적어, 고려 금속활자 인쇄를 알려 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꼽혀요.
-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 강화도에서 대장경을 새길 때 임금과 신하가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기를 비는 글을 지었어요.
묘역에서 볼 것
묘는 진강산과 이어진 덕정산 남동쪽 낮은 구릉에 있어요. 지름 약 3.8m의 둥근 봉분 뒤로 꼬리처럼 흙이 이어지고, 두 단의 둔덕(사성)이 무덤을 감싸요.
- 석인상과 석양: 봉분 양옆에 머리가 큰 기둥 모양의 고려 양식 석인상 한 쌍과 돌로 만든 양 한 쌍이 서 있어요. 둥글게 말린 뿔과 두툼한 몸통의 석양은 이 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석물이에요.
- 장명등과 상석: 무덤 앞에 네모난 장명등, 상석, 향로석이 놓여 있고, 망주석 한 쌍이 양쪽을 지켜요.
- 묘비: 봉분 오른쪽 앞의 비석은 1919년 세운 것으로 '고려이상국문순공하음백규보지묘(高麗李相國文順公河陰伯奎報之墓)'라고 새겨져 있어요.
- 유영각과 사가재: 아래쪽 왼편에 영정을 모신 유영각, 오른편에 재실인 사가재와 신도비가 있어요.
봉분 아래 병풍석은 현대에 두른 것이고, 1960년대 후손들이 묘역을 정비한 뒤 1980년대 유영각과 재실, 1983년 문학비, 1991년 복원비가 차례로 들어섰어요. 그래서 처음 무덤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어요. 묘는 197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됐고,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뒤 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이 됐어요. 지금은 여주 이씨 문순공파 종중이 관리해요.
Tripto 팁
- 소요 시간: 묘역만 보면 30분 정도예요. 석양과 석인상은 가까이에서 보면 고려 석물 특유의 단순한 조각이 잘 보여요.
- 주소: 인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길직리)이에요. 내비게이션에는 이 주소를 입력하세요.
- 함께 보기: 약 4km 떨어진 전등사, 남쪽의 마니산과 묶으면 강화 남부 반나절 코스가 돼요. 강화도에는 고려가 몽골을 피해 도읍을 옮겼던 39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이규보의 말년과 함께 보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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