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0 분
주요 볼거리
- 300년 넘게 한 집안이 사는 99칸 사대부 가옥
- 연못 위에 선 정자 활래정(1816)
- 사랑채 열화당(1815)
- 여운형이 영어를 가르친 동진학교 터
- 국가민속문화유산 제5호
장소 소개
경포호가 지금보다 훨씬 넓던 시절, 이 마을 사람들은 배를 이어 만든 다리로 호수를 건넜어요. 그래서 마을 이름이 배다리, 한자로 선교(船橋)였고, 이곳에 자리 잡은 큰 집이 **선교장(船橋莊)**이에요. 안채와 사랑채, 별당, 정자까지 조선 상류층 살림집의 구성을 거의 모두 갖춘 99칸 가옥으로, 300년 넘게 같은 집안이 대를 이어 살고 있어요.
역사: 족제비 떼가 알려 준 집터
선교장은 세종의 형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이 처음 지었어요. 그가 족제비 떼를 따라가다 이 명당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가장 오래된 안채는 18세기 초에 지어졌고, 자료에 따라 1700년 이전 또는 1703년으로 적고 있어요. 이후 10대에 걸쳐 건물을 하나씩 늘려 지금의 모습이 되었어요.
1815년 사랑채 열화당이, 이듬해인 1816년 연못 위 정자 활래정이 세워졌어요.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찾아 길을 나선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에 머물렀고, 행랑채는 그런 손님들의 숙소로 쓰였어요. 1908년에는 곡식 창고를 고쳐 신학문을 가르치는 동진학교를 열었는데,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쳤어요. 학교는 이후 일제에 의해 문을 닫았어요. 선교장은 196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어요.
무엇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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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래정: 대문 밖 연못에 돌기둥을 세워 마루를 물 위로 내민 ㄱ자형 정자예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든다는 뜻의 이름처럼, 여름이면 연잎이 정자 아래를 가득 채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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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집안 남자 주인이 머물던 큰 사랑채예요. 친척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기쁘게 살자는 뜻을 담았고, 도연명의 시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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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동별당, 서별당: 안채는 안주인의 공간, 동별당은 잔치와 손님맞이, 서별당은 서고 겸 공부방으로 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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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행랑채: 집 앞을 길게 두른 행랑채가 선교장의 규모를 가장 잘 보여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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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 박물관과 생활유물 전시관: 집안에서 대대로 쓰던 살림살이와 유물을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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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과 홍예헌: 열화당 뒤뜰의 초가 정자 초정은 선조들이 소작인의 고단함을 함께 나누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고, 홍예헌은 찾아온 시인과 묵객, 분가 전의 가족이 머물던 건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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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앗간과 청룡길: 마당 한쪽의 디딜방앗간에서 옛 살림을 엿볼 수 있고, 집 뒤 낮은 산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 청룡길도 걸어 볼 수 있어요.
관람할 때 알아 둘 점
사당과 외별당처럼 지금도 후손이 생활하거나 제사를 모시는 공간은 들어갈 수 없어요. 건물 보호를 위해 경내는 모두 금연이고, 안내견을 제외한 반려동물은 들어갈 수 없어요. 일부 건물은 한옥 숙박 공간으로 운영돼요.
Tripto 팁
- 관람 시간: 09:00~18:00이며 연중무휴예요. 계절에 따라 마감 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세요.
- 입장료: 어른 5,000원, 청소년·경로 등 할인 3,000원, 어린이 2,000원이에요. 강릉 시민은 신분증을 보여 주면 무료예요.
- 해설: 한국어 문화관광해설은 09:00~16:00(점심시간 12:00
13:30 제외)에 운영되며, 3040분 정도 걸려요. - 함께 가기: 오죽헌은 약 1km, 경포대는 약 1.4km 거리라 경포호 주변 일정으로 묶기 좋아요.
- 가장 좋은 때: 활래정 연못에 연꽃이 피는 여름이 특히 아름다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