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0 분
주요 볼거리
- 앞면 7단, 높이 7.15m의 계단식 돌무덤
- 용도를 알 수 없는 네 번째 단의 감실
- 가야 마지막 왕이자 김유신의 증조부 구형왕
- 홍살문과 돌다리가 있는 입구
- 1971년 지정된 국가 사적
장소 소개
지리산 동쪽 왕산 기슭, 비탈을 따라 돌을 일곱 단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돌무덤이 있어요.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산청 전 구형왕릉이에요. 흙으로 봉분을 덮은 다른 왕릉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정말 무덤인지 돌탑인지를 두고 지금도 의견이 갈려요.
나라를 넘겨준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은 금관가야의 제10대 왕으로, 구해 또는 양왕이라고도 불러요. 521년 왕위에 올라 11년 동안 다스리다가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겼어요.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그의 증손자예요. 이름 앞의 '전(傳)'은 무덤의 주인이 확실하지 않고 그렇게 전해 온다는 뜻이에요. 이곳은 1971년 2월 9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가야는 낙동강 하류 일대에 있던 여러 작은 나라의 연맹이었고, 금관가야는 지금의 김해를 중심으로 한 나라였어요. 김해에 시조 김수로왕의 능이 있다면, 산청에는 마지막 왕의 무덤이 전해지는 셈이에요. 시작과 끝이 서로 다른 곳에 남아 있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무덤일까, 돌탑일까
무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다듬지 않은 돌을 쌓아 만들었어요. 앞면은 7단의 층을 이루고, 앞면 가운데 높이는 7.15m예요. 층의 선은 반듯하지 않고 부드럽게 휘어져 있고, 꼭대기는 봉분처럼 둥글어요.
조선 시대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은 이곳을 돌로 쌓은 언덕이 네 면에 층을 이루고 있어 세간에서 왕릉이라 전한다고 적었어요. 반면 안동과 의성 지방에 비슷한 돌무더기가 있다는 점을 들어 돌탑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요. '구형왕릉'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문인 **홍의영(1750~1815)**의 『왕산심릉기』에 처음 나타나요. 근처에 있던 절 왕산사에 전하던 기록에도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절에 보관된 나무 궤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과 칼이 나왔다고 전해요. 왕산사는 사라지고 지금은 재실만 남아 있어요.
둘러볼 곳
- 7단 돌무덤: 앞에서 올려다보면 계단식 피라미드처럼 보여요. 옆으로 돌아가면 뒷면이 훨씬 가파른 것을 알 수 있어요.
- 감실: 앞면 네 번째 단 가운데에 가로세로 40cm쯤 되는 작은 감실이 뚫려 있어요. 무엇에 쓰였는지는 아직 몰라요.
- 돌담과 석물: 무덤을 높이 1m 남짓한 돌담이 둘러싸고, 앞에는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 새긴 비석과 상석, 장명등, 문인석·무인석·석수가 한 쌍씩 서 있어요. 석물은 훨씬 뒤에 세운 것이에요.
- 홍살문과 돌다리: 입구 개울 위 돌다리를 건너 붉은 홍살문을 지나면 무덤 앞마당이 나와요.
Tripto 팁
- 관람: 24시간 둘러볼 수 있고 주차장이 있어요.
- 시간: 무덤과 주변을 천천히 보는 데 30분~1시간이면 돼요.
- 언제 갈까: 숲이 푸른 5~6월과 단풍이 드는 10~11월이 좋아요. 오전에는 햇빛이 돌무덤 앞면을 비춰 층이 또렷하게 보여요.
- 덕양전: 구형왕의 후손들이 1793년에 세운 사당 덕양전에서는 지금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요.
- 함께 가기: 같은 금서면의 동의보감촌과 가까워 산청 여행과 묶기 좋아요.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어려워 자동차나 택시를 이용하세요.
방문 계획
오시는 길
길찾기방문 전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