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0 분
주요 볼거리
- 높이 4.3m의 고달사지 승탑(국보)
- 975년 원종대사탑비의 역동적인 거북 받침
-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석조대좌(보물)
- 석공 고달의 전설
- 신륵사·여주박물관과 묶는 여주 코스
장소 소개
고달사지는 여주 북내면 혜목산 자락에 남은 큰 절터예요. 764년 세워진 고달사는 고려 때 왕실의 보호를 받는 큰 절로 자랐지만, 언제 왜 문을 닫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건물은 사라졌어도 넓은 풀밭 곳곳에 국보 승탑과 보물 석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돌 조각의 힘과 솜씨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대찰의 흥망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졌어요. 신라 말에는 구산선문 가운데 봉림산문을 연 **현욱(787868)**이 절을 다시 일으켰고, 고려의 **원종대사 찬유(869958)**가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고려 왕들이 아끼는 큰 절로 성장했어요. 절이 사라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조선 시대, 대략 17세기 후반 무렵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발굴 조사로 금당 터를 비롯한 건물 터가 확인돼, 지금은 절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요. 1998년 조사에서는 '고달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와 이곳이 고달사 터임을 확실하게 알려 주었어요. 사방 30리가 절 땅이었고 머무는 스님이 수백 명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절터 면적은 지금 남은 구역만 약 **6만㎡**에 이르러요.
절 이름에는 전설이 있어요. 고달이라는 석공이 가족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짓는 데 혼을 바쳤고, 일을 마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큰스님이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절 이름이 고달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절터에 남은 돌의 걸작
- 고달사지 승탑(국보): 높이 4.3m의 고려 전기 승탑이에요. 가운데받침돌에 용 같은 얼굴의 거북이 정면을 바라보고, 그 둘레로 용 네 마리가 여의주를 쥔 채 구름 속을 휘감아요. 몸돌에는 문짝과 자물쇠, 사천왕상을 새겼어요. 신라 승탑의 기본형인 8각 구조를 따르면서도 세부 조각에는 고려만의 힘이 넘쳐, 고려 전기 승탑의 대표작으로 꼽혀요.
- 원종대사탑비(보물): 975년에 세운 탑비예요. 목을 움츠린 채 이를 악물고 정면을 노려보는 거북 받침과, 구름 속 용을 새긴 머릿돌이 아주 역동적이에요. 1915년 비가 넘어지며 몸돌이 깨져, 지금 서 있는 몸돌은 복제품이고 원래 몸돌은 여주박물관에 있어요.
- 원종대사탑(보물): 탑비와 짝을 이루는 원종대사의 승탑으로, 거북과 용 네 마리를 새긴 받침이 국보 승탑과 닮았어요.
- 석조대좌(보물): 불상은 사라지고 받침만 남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사각 대좌예요. 위아래로 마주 보는 연꽃잎 조각이 부드러워요.
- 쌍사자 석등: 이 절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보물 석등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서 있어요.
- 석조: 스님들이 물을 담아 쓰던 커다란 돌그릇도 남아 있어, 대찰의 살림 규모를 짐작하게 해요.
Tripto 팁
- 이용 정보: 상시 개방, 입장료가 없고 주차장에 간이화장실이 있어요. 절터와 승탑들을 둘러보는 데 40분~1시간이면 돼요.
- 동선: 주차장에서 석조대좌와 탑비를 먼저 보고, 언덕 위쪽 숲 가장자리의 원종대사탑과 국보 승탑으로 올라가면 자연스러워요. 승탑 뒤편에는 고려 시대 돌방무덤도 있어요.
- 가는 길: 경강선 여주역에서 직선거리로 약 12km 떨어져 있어 자가용이 편해요. 근처에 '고달사지' 버스 정류장도 있어요.
- 함께 보기: 원래 탑비 몸돌이 있는 여주박물관, 남한강 가의 신륵사, 세종대왕릉과 묶으면 여주 하루 코스가 돼요.
- 계절: 그늘이 적은 넓은 풀밭이라 봄·가을이 걷기 좋고, 눈 덮인 날에는 거북과 용 조각의 윤곽이 더 또렷하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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