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2 시간
주요 볼거리
- 조선 객사 중 가장 큰 정청
- 객사로는 드문 팔작지붕
- 궁궐 정전을 닮은 월대와 평면
- 1592년 김천일 의병 출병식 터
- 바로 앞 나주곰탕 거리
장소 소개
나주 금성관은 조선 시대 나주목의 객사였던 건물이에요.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위패를 모시고 고을을 찾은 관리와 사신을 묵게 하던 곳인데, 금성관의 중심 건물은 조선 객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꼽혀요. 나주 원도심 한가운데에 있어서 나주곰탕 골목과 함께 둘러보기 좋아요.
전라도의 '라'가 된 고을
'전라도'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두 큰 고을인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합쳐 만들었어요. 그만큼 나주는 고려와 조선 시대 내내 호남의 중심 도시였고, 큰 고을을 다스리는 목사가 머무는 나주목이었어요. 금성관은 그런 나주목 관아의 중심에 선 건물이라 규모와 격이 남달라요. '금성'은 나주의 옛 이름에서 따왔어요.
객사란 어떤 곳일까
조선의 고을마다 있던 객사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를 모셨어요.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면 고을 수령과 관리들이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올렸고,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나 사신을 맞아 잔치를 열기도 했어요. 그래서 객사는 고을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었어요.
금성관은 조선 성종 때인 1475~1479년 사이 나주목사 이유인이 세웠다고 전해져요. 지금 건물의 큰 틀은 1617년 중수 때 모습을 이어 온 것으로 보이고, 세부 목구조에는 1775년과 1885년 수리 때의 기법이 남아 있어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오랫동안 나주군청과 시청으로 쓰이며 벽과 바닥, 천장이 바뀌었다가 1976년(자료에 따라 1977년)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됐어요. 2019년 보물로 지정됐어요.
무엇을 볼까
- 팔작지붕 정청: 정면 5칸, 측면 4칸의 정청은 옆에서 보면 지붕이 여덟 팔(八) 자를 그리는 팔작지붕이에요. 보통 객사 정청은 단순한 맞배지붕이라, 이 점이 금성관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가까이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도 팔작지붕이어서 나주만의 지역색으로 봐요.
- 궁궐을 닮은 구성: 건물 앞의 넓은 기단(월대)과 평면, 천장 구성이 일반 객사보다 궁궐 정전에 가까워요. 마당 한가운데 돌길을 따라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며 그 위계를 느껴 보세요.
- 공포: 지붕을 받치는 처마 밑 짜임은 기둥 위에 새 날개 모양 부재를 세 겹 겹친 익공식이에요. 여기에 주심포 양식의 요소를 섞어, 들인 품에 비해 건물의 격이 높아 보이도록 한 솜씨로 평가돼요.
- 양옆 날개채: 정청 좌우로 사신과 관리가 묵던 동익헌과 서익헌이 붙어 있어요.
나주 사람들의 기억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의병장 김천일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열었어요.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시해된 뒤에는 이곳에서 추모 의식을 열며 항일 의지를 다졌다고 전해져요. 원래 정문이던 2층 누각 망화루는 사라졌고, 현판과 내삼문은 나주 남산시민공원으로 옮겨졌어요.
Tripto 팁
- 시간: 금성관만 보면 30분이면 충분해요. 길 건너 나주목 관아 정문 정수루와 목사내아, 나주향교까지 걸어서 묶으면 2시간 정도 잡으세요.
- 함께 즐기기: 금성관 바로 앞이 나주곰탕 거리예요. 맑은 국물의 곰탕으로 점심을 먹고 원도심을 걸어 보세요.
- 좋은 때: 마당이 넓고 그늘이 적어서 한여름 한낮보다 봄·가을이나 해 질 무렵이 쾌적해요.
- 가는 법: KTX가 서는 나주역에서 원도심까지 택시로 10분 안팎이고, 시내버스도 다녀요. 광주 송정역에서도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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