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0 분
주요 볼거리
- 1898년 완공된 화강암 기념문
- 높이 14.28m, 화강암 약 1,850개
- 앞에 남은 영은문 주초 두 개
- 한글·한자 현판과 태극기 조각
- 같은 공원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장소 소개
파리 개선문을 닮은 화강암 문이 서울 서대문구의 공원에 서 있어요. 독립문은 1898년 시민의 성금을 모아 세운 기념문으로, 원래 이 자리에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었어요. 문 앞에 남은 두 개의 돌기둥이 그 흔적이에요.
역사: 영은문을 헐고 세운 문
조선은 오랫동안 청나라 사신을 서대문 밖 영은문에서 맞이했어요. 청일전쟁 뒤 1895년 이 문이 헐리자, 미국에서 돌아온 개화파 지식인 서재필은 그 자리에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문과 공원을 세우자고 제안했어요. 이 일을 추진하려고 독립협회가 만들어졌고, 왕실의 동의와 각계의 성금으로 1896년 11월 21일 공사를 시작해 1898년 완공했어요. 당시 '독립'은 무엇보다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뜻했어요.
설계는 외국인이 맡았고, 공사는 한국인 기술자 심의석이 지휘했어요. 서재필은 자서전에서 설계자를 독일공사관에서 일하던 스위스인 기사라고만 적었어요.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어요.
독립문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1979년 성산대로 공사 때 원래 자리에서 약 70m 떨어진 지금 위치로 옮겨졌어요.
무엇을 볼까
- 문 전체: 높이 14.28m, 너비 11.48m로 화강암 약 1,850개를 쌓아 만들었어요. 가운데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나 있어요.
- 이맛돌의 오얏꽃: 홍예문 꼭대기 이맛돌에 조선 왕실의 상징인 오얏꽃(자두꽃) 무늬가 새겨져 있어요.
- 현판과 태극기: 문 위 앞쪽에는 한글로 '독립문', 뒤쪽에는 한자로 '獨立門'이 새겨져 있고, 양옆에 태극기가 있어요. 앞뒤를 모두 돌아보세요.
- 영은문 주초: 문 앞에 남은 두 개의 돌기둥은 헐린 영은문의 기둥 받침이에요. 따로 사적으로 지정돼 있어요.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
- 현판 글씨를 누가 썼는지는 아직 논란이에요. 이완용이라는 설과 김가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요.
- 3·1 운동 이후 문에 새겨진 태극기는 독립운동의 상징이 됐고, 광복 뒤 1954년부터 쓰인 100환 지폐 뒷면에도 독립문이 들어갔어요.
독립문이 걸어온 길
서재필은 1896년 6월 20일 자 독립신문 사설에서 독립문을 세우자고 처음 본격적으로 제안했어요. 한글판 사설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했지만, 같은 날 영문판에서는 부패와 속임수에서 벗어나는 것, 일본과 러시아,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독립까지 뜻한다고 썼어요.
일제는 통치 초기에 독립문을 청일전쟁 승리의 상징으로 삼으려고 문화재로 지정하고 수리했어요. 하지만 독립문의 태극기는 오히려 독립운동의 상징이 됐고, 그 때문에 일제강점기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광복 뒤에는 독립협회 회원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문을 독립의 상징으로 적극 내세웠어요.
문 왼쪽 안에는 꼭대기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고, 꼭대기는 돌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Tripto 팁
- 가는 법: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어요.
- 함께 둘러보기: 같은 공원 안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있어요. 운영 시간은 방문 전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하세요.
- 시간: 독립문만 보면 20~30분, 형무소 역사관까지 보면 2시간 정도 걸려요.
- 찾아보기: 이맛돌의 오얏꽃, 앞뒤의 한글·한자 현판, 영은문 주초를 차례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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