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0 분
주요 볼거리
- 폐위된 왕이 잠든 '능'이 아닌 '묘'
- 1513년 강화 교동도에서 옮겨 온 쌍분
- '연산군지묘'라고 새긴 묘비
- 의정궁주와 휘순공주 부부의 묘
- 원당샘공원의 큰 은행나무
장소 소개
조선 왕의 무덤은 보통 '능(陵)'이라 부르지만,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이 무덤은 '묘(墓)' 예요. 폭정 끝에 왕위에서 쫓겨난 조선 제10대 임금 연산군과 부인 거창군부인 신씨가 잠든 곳이기 때문이에요. 왕릉처럼 웅장한 석물은 없지만, 쫓겨난 왕이 어떻게 묻혔는지를 보여 주는 드문 장소라 조선왕릉과 비교해 보면 훨씬 흥미로워요.
왕에서 군으로
연산군은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로 1494년 왕위에 올랐어요. 즉위 초에는 제도를 정비하고 국방에도 힘썼지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많은 사람을 죽였고 이후 사치와 향락으로 조정을 어지럽혔어요.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강화 교동도로 유배됐고, 그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왕의 지위를 잃고 '군(君)'으로 낮춰졌기 때문에 무덤도 능이 아닌 묘가 됐어요.
처음 무덤은 유배지에 만들어졌어요. 부인 신씨가 1512년 중종에게 글을 올려 이장을 청했고, 이듬해인 1513년 왕자의 예에 맞춰 지금의 자리로 옮겼어요. 이곳은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무덤이 있던 곳이기도 해요.
무덤에서 볼 것
- 나란히 놓인 두 봉분: 앞에서 볼 때 왼쪽이 연산군, 오른쪽이 거창군부인의 묘예요.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병풍석이나 석양, 석마는 없고 장명등과 망주석 등 왕자묘 형식의 석물만 갖췄어요.
- 묘비: 연산군 묘비 앞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고 새겨져 있어요. 왕릉의 비석과 비교해 보면 달라진 지위가 그대로 드러나요.
- 함께 잠든 사람들: 연산군 부부 묘 앞쪽에는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의 묘가 있고, 그 아래에는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와 사위 구문경의 묘가 있어요.
연산군묘는 능이 아니어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에는 포함되지 않았어요. 대신 1991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방학동 골목과 함께
무덤 앞 원당샘공원에는 수백 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어 가을이면 일대가 노랗게 물들어요. 근처에는 시인 김수영의 문학관과 간송 전형필의 옛집도 있어서, 도봉구 방학동 골목을 묶어 반나절 산책 코스로 다니기 좋아요.
주택가 속에 남은 숲
무덤이 들어설 당시 이곳은 양주 땅의 인적 드문 야산이었어요. 이후 도시가 커지며 주변이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지만, 연산군묘는 국가 사적이라 개발에서 비켜나 지금도 작은 숲으로 남아 있어요. 연산군 부부 묘 앞쪽의 의정궁주 조씨는 1454년에 세상을 떠나 연산군보다 먼저 이곳에 묻혔어요. 근처에는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의 묘도 있어요.
Tripto 팁
- 관람: 입장료 없이 개방하고, 월요일에는 쉬어요. 관람 시간은 하절기 09:00
18:00, 동절기 09:0017:00로 안내돼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세요. - 소요 시간: 무덤만 보면 20~30분, 은행나무와 주변 문학관까지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예요.
- 좋은 때: 은행나무가 물드는 늦가을이 가장 보기 좋아요.
- 주소: 서울 도봉구 방학로17길 46이에요. 주변이 주택가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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