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0 분
주요 볼거리
-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원형 봉토분
- 지름 26m, 높이 6m의 봉분과 돌난간
- 둘레돌에 남은 십이지신상 다섯 상(돼지·쥐·소·호랑이·토끼)
-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 속의 조용한 왕릉
- 분황사에서 약 1km, 상시 개방
장소 소개
경주 북천 가의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 속에 자리한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무덤이에요. 지름 26m, 높이 6m의 둥근 봉분 둘레를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둘레돌이 감싸고 있는데, 지금은 다섯 상만 남았어요. 사람이 붐비는 대릉원과 달리 솔숲 사이를 조용히 걸으며 볼 수 있는 왕릉이에요.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된 헌덕왕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에요.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어요. 재위하는 동안 농사를 장려하고 당나라와 가깝게 지냈지만, 나라 안은 잇따른 반란으로 무척 어수선했어요.
『삼국사기』에는 826년 왕이 세상을 떠나자 천림사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적혀 있어요. 천림사가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왕릉 남쪽에 절터가 있어 그곳을 천림사 터로 보고 있어요. 무덤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둘레돌과 십이지신상
봉분 아래에는 무덤을 지키는 둘레돌을 둘렀어요. 바닥에 받침돌을 한 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면석을 세운 뒤, 면석 사이에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웠어요. 탱석에는 방향에 맞춰 십이지신상을 새겼는데, 지금은 돼지·쥐·소·호랑이·토끼 다섯 상만 남아 있어요. 둘레돌 바깥으로는 돌기둥 난간을 세우고, 둘레돌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았어요.
지금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한 것으로, 이때 둘레돌 일부와 돌난간을 새로 만들었어요. 남아 있는 십이지신상을 찾아 무덤을 한 바퀴 돌아보면 옛 돌과 새 돌의 차이가 눈에 들어와요.
헌덕왕 시대의 신라
헌덕왕이 다스린 9세기 초는 신라 왕실이 흔들리기 시작한 때예요. 왕위를 둘러싼 진골 귀족들의 다툼이 잦았고, 822년에는 웅천주(지금의 공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어요. 그는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정할 만큼 세력이 컸지만 곧 진압됐어요. 3년 뒤 그 아들 김범문이 다시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했어요. 김헌창의 난은 신라 하대에 지방 세력이 중앙 왕실에 정면으로 맞선 첫 대규모 반란으로 꼽혀요.
십이지신상을 새긴 둘레돌은 통일신라 왕릉의 특징이에요. 십이지가 방향을 가리키기 때문에, 남은 다섯 상(돼지·쥐·소·호랑이·토끼)은 무덤의 북서쪽에서 북쪽을 거쳐 동쪽까지 이어지는 자리에 있어요. 무덤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차례로 찾아보면 재미있어요.
Tripto 팁
- 입장: 상시 개방, 연중무휴예요. 주차는 할 수 있지만 화장실은 없어요.
- 시간: 봉분을 한 바퀴 돌며 십이지신상을 찾아보는 데 20~30분이면 충분해요.
- 함께 가기: 분황사에서 직선거리로 약 1km라 자전거로 분황사·황룡사지와 묶어 돌기 좋아요. 둘레돌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다른 신라 무덤으로는 김유신 묘와 괘릉(원성왕릉)이 있어, 함께 비교해 보면 새김 솜씨의 차이가 보여요.
- 언제: 솔숲 그늘이 짙어 한여름에도 걷기 편하고, 이른 아침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좋아요.
- 문의: 경주시 문화유산과 054-779-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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