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시간
주요 볼거리
- 1598년 조선·명 연합 수군 본부였던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 관왕묘에서 이순신 사당으로 바뀐 충무사
- 장군의 유해를 임시로 모셨던 월송대
-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고금도 고인돌
- 연중무휴 09:00~18:00, 입장 무료
장소 소개
이순신 장군이 생애 마지막 진영을 차린 섬이 완도 고금도예요.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이 이 섬 동쪽 묘당도에 함께 진을 쳤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장군의 유해도 이곳으로 돌아와 머물렀어요. 2007년 고금대교가 놓인 뒤로는 강진에서 차로 몇 분이면 건너갈 수 있어요.
조선과 명의 연합 수군 본부
1598년 2월 17일, 이순신은 수군 8,000여 명을 이끌고 고하도(지금의 목포)에서 고금도로 진영을 옮겼어요. 바닷길을 지키기 좋은 요새였고, 장군이 이곳에 자리 잡은 뒤로 장흥과 고흥 일대를 노략질하던 왜군이 순천 쪽으로 물러나 큰 전투는 드물었어요. 장군은 그 사이 본영을 짓고 피란민을 거두는 데 힘을 쏟았어요. 유성룡은 『징비록』에 고금도에 모인 민가가 수만 호로, 한산도 시절의 10배에 이르렀다고 적었어요.
같은 해 7월 16일에는 명나라 장수 진린이 수군 5,000명을 이끌고 도착했어요. 두 나라 군대가 묘당도에 함께 진을 치면서 이곳은 약 7개월 동안 조선과 명의 연합 수군 본부가 됐어요. 연합 함대는 9월 순천 왜교성 공략에 나섰다가 10월 고금도로 돌아와 전열을 가다듬었고, 11월 노량으로 출진했어요.
장군의 유해가 머문 자리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아침,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54세로 전사했어요. 유해는 고금도로 옮겨져 묘당도 월송대에 모셔졌고, 이듬해 1599년 2월 11일 고향 아산으로 떠났어요. 이곳에 머문 기간은 자료에 따라 열흘 또는 88일로 달라요. 월송대 터에는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무엇을 볼까
- 충무사: 이순신을 모신 사당이에요. 원래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 장병들의 무사를 빌려고 세운 관왕묘였어요. 일제강점기에 관우상과 위패, 유물이 바다에 버려졌고, 광복 뒤 그 자리에 충무사가 들어섰어요.
- 옥천사: 1666년(현종 7) 관왕묘를 고치면서 그 옆에 지은 작은 암자예요. 사당을 지키고 제사를 돕는 역할을 했어요.
- 월송대: 장군의 유해를 임시로 모셨던 자리로, 충무사 가까이에 있어요.
- 고금도 지석묘군: 이충무공 유적 근처에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고인돌이 모여 있어요. 언제든 무료로 둘러볼 수 있어요.
묘당도 일대는 1963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섬 자체도 알아 두기
고금도는 면적 약 40㎢, 해안선 길이 54.5km로 꽤 큰 섬이에요. 북서쪽에는 높이 140~226m의 가파른 바위산들이 솟아 있고, 남동쪽은 낮고 평평해요. 주변 바다에서는 굴과 김 양식이 활발해요. 강진 마량면, 완도 약산면, 완도읍 쪽과 다리 세 개로 이어져 있어서, 고금대교가 놓이기 전 40분 넘게 배를 타야 했던 길이 지금은 차로 5분이면 충분해요.
Tripto 팁
- 관람: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은 연중무휴 09:00~18:00에 둘러볼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예요.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어요(문의 061-550-5464).
- 가는 길: 강진 마량에서 고금대교를 건너 들어가요. 섬 안 유적끼리 거리가 있어 자동차로 다니는 편이 편해요.
- 소요 시간: 충무사와 월송대, 고인돌까지 보려면 1~2시간을 잡으세요.
- 함께 가기: 다리로 이어진 약산도와 완도, 청해진 유적을 묶으면 완도 섬 드라이브 하루 코스가 돼요. 강진 쪽으로 나오면 다산초당도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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