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0 분
주요 볼거리
-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닦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능
- 거북 받침과 용 머릿돌이 남은 태종무열왕릉비(국보)
-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아는 신라 왕릉
- 능 뒤 언덕의 서악동 고분군 네 기
- 하절기 09:00~18:00, 어른 2,000원
장소 소개
경주 서쪽 선도산 자락의 무열왕릉은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무덤이에요. 신라 왕릉 가운데 무덤 주인을 확실히 아는 몇 안 되는 능이고, 그 근거가 된 태종무열왕릉비(국보)의 거북 받침돌은 신라 석조 조각의 걸작으로 꼽혀요. 능 뒤로는 커다란 고분 네 기가 언덕을 따라 이어져 있어요.
김춘추, 첫 진골 출신 왕
김춘추는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에요. 즉위 전부터 고구려와 당나라를 직접 오가며 외교 능력을 보였고, 왕이 된 뒤 당과 손잡고 백제를 정복해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다졌어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즉위 8년 만인 661년 6월 세상을 떠나 '태종무열'이라는 시호를 받았어요. 통일은 아들 문무왕 때 이뤄져요.
능과 능비
- 무열왕릉(사적): 서악동 언덕의 큰 무덤들 가운데 가장 아래쪽에 있어요. 크기는 자료에 따라 높이 8.7m·둘레 114m, 또는 높이 약 13m·둘레 112m로 적혀 있어요. 아직 발굴하지 않았지만 굴식돌방무덤으로 봐요. 봉분 가장자리에는 둘레돌로 보이는 깬돌이 일부 드러나 있고, 후대 왕릉에 보이는 십이지신상 둘레돌은 아직 없어요.
- 태종무열왕릉비(국보): 능 앞 비각 안에 비석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어요.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힘차게 내디딘 모습이고, 머릿돌에는 용 여섯 마리가 셋씩 뒤엉켜 여의주를 받들고 있어요. 머릿돌 앞면 가운데의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 글씨 덕분에 이 무덤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어요. 글씨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이 썼다고 전해요.
- 당나라 양식의 첫 사례: 거북 받침과 용 머릿돌을 갖춘 통일신라 비석 양식이 처음 나타난 예로 평가받아요.
서악동 고분군
능 바로 뒤 구릉에는 서악동 고분군의 대형 원형 무덤 네 기가 위로 줄지어 있어요.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문흥대왕의 능으로 추정하기도 해요. 잔디 언덕 사이로 걸으며 선도산을 배경으로 무덤이 겹쳐 보이는 풍경이 좋아요. 고분군은 상시 개방하고 무료예요.
김춘추와 김유신
김춘추의 곁에는 늘 김유신이 있었어요.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 문희와 혼인했고, 두 사람은 정치와 군사에서 서로를 받쳐 주며 백제 정복을 이끌었어요. 김유신의 묘도 무열왕릉에서 멀지 않은 송화산 자락에 있어 함께 둘러보면 이야기가 이어져요.
능비를 더 자세히
능비는 통일신라 문무왕 원년인 661년에 세웠어요. 거북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 육각형 무늬를 새겼고, 등 가운데 비석을 꽂던 자리 둘레에는 연꽃을 돌렸어요. 표현이 사실적이고 힘이 넘쳐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꼽혀요. 무덤 주변은 1972~1973년에 정비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지정 면적은 28,487㎡예요.
Tripto 팁
- 관람 시간: 하절기(3
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연중무휴예요. -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000원, 어린이 500원이에요. 주차는 무료예요.
- 소요 시간: 능과 능비, 뒤쪽 서악동 고분군까지 걸어 보면 40분~1시간 걸려요.
- 추천 시간: 잔디가 푸른 봄~가을이 좋고, 늦은 오후에는 고분 언덕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 사진이 잘 나와요.
- 교통: 경주 시내 서쪽이라 시내에서 택시나 자전거로 오가기 편해요. 김유신묘와 경주 오릉도 차로 가까워 서쪽 경주 코스로 묶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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