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0 분
주요 볼거리
- 524년 법흥왕 때 세운 국보 비석
- 1988년 논에서 발견된 길이 204cm의 자연석 비
- 신라 초기 율령과 육부 회의를 보여 주는 비문
- 삼국 주요 비석 10기 모형 전시실
- 모형비 25기와 송덕비 45기가 선 비석 공원
장소 소개
1988년 울진 죽변면 봉평리의 논에서 흙을 파 옮기던 중 글자가 빼곡한 길쭉한 돌이 드러났어요. 마을 주민이 알아보고 신고한 이 돌이 울진 봉평리 신라비로, 신라 법흥왕 때인 524년에 세운 것으로 보는 국보예요. 신라가 동해안으로 땅을 넓히던 시절, 새로 편입된 마을에서 일어난 저항과 그 처벌을 기록한 드문 1,500년 전의 공문서예요.
비석에 새긴 처벌 기록
당시 신라는 동해안에 실직주를 두고 지금의 울진 일대를 새로 편입했어요. 주민들이 이에 맞서 들고일어나자 신라는 육부 회의를 열어 대인을 보내 벌을 주고, 다시는 대항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 비를 세운 것으로 해석돼요. 비문에 나오는 마을 '거벌모라'는 지금의 봉평 일대로 여겨져, 비석은 1,500년 전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마을에서 다시 세상에 나온 셈이에요. 비문에는 법흥왕을 '매금왕'이라 부르고 여러 부의 귀족이 함께 명령을 내린 모습이 담겨, 왕권이 아직 절대적이지 않던 신라 초기 정치를 엿볼 수 있어요. 노인법 같은 법 조항과 매질의 형벌도 적혀 있어,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되었어요.
논두렁에 놓여 있던 국보
비석은 논에 흙을 새로 넣는 작업 중에 파내어져 두세 달 동안 그냥 놓여 있었어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마을 주민이 신고하면서 정체가 밝혀졌고, 발견된 해인 1988년 11월에 곧바로 국보로 지정되었어요. 오래 땅속에 묻혀 있던 덕분에 원래 모습은 잘 남았지만 글자 일부는 닳아 지금도 학자마다 읽는 법이 조금씩 달라요. 신라식으로 변형된 독특한 한문을 써서 전체 줄거리만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있어요.
돌을 보며 찾아볼 것
비는 다듬지 않은 화강암 자연석 한 면에 글을 새겼고, 길이는 204cm예요.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깝고, 글자는 10행에 400자 가까이 돼요. 글씨는 해서체에 예서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규모는 작지만 투박한 생김새가 고구려의 광개토왕비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아요. 오래 땅에 묻혀 있어 일부 글자는 닳았지만, 가까이 서면 행을 따라 새긴 글자의 줄이 또렷이 보여요.
봉평 신라비 전시관
비석은 지금 발견 장소 근처에 2011년 문을 연 전시관 안에 보관되어 있어요. 제1전시실에서 진짜 비석과 탁본을 보고, 제2전시실에서는 신라 6기, 고구려 1기, 백제 3기 등 삼국의 주요 비석 10기를 본뜬 모형을 비교해 볼 수 있어요. 바깥 비석 공원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보·보물급 비석 모형 25기와 울진 지역 송덕비 45기가 늘어서 있어 '비석 박물관'이라 할 만해요.
Tripto 팁
- 관람: 운영 시간과 휴관일, 관람료는 방문 전 울진군 문화관광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 소요 시간: 전시관과 야외 비석 공원을 합쳐 40분~1시간이에요.
- 가는 길: 주소는 울진군 죽변면 봉화길 15예요. 죽변항과 가까워 항구 구경과 묶기 좋고, 대중교통이 드물어 차로 가는 편이 편해요.
- 함께 보기: 남쪽으로 차로 20분 남짓 거리에 울진 성류굴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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