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시간
주요 볼거리
- 윤봉길이 태어난 초가 광현당
- 1911년부터 망명 전까지 살던 저한당
- 야학과 농촌 계몽의 거점 부흥원
- 김구와 바꿔 찬 회중시계 등 보물 유품
- 매년 4월 29일 무렵 매헌문화제
장소 소개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를 쓰러뜨린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1908~1932)**은 충남 예산 덕산면 시량리의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어요.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에는 그가 태어난 집 광현당, 망명 전까지 살던 저한당, 농촌 계몽 활동의 무대였던 부흥원, 사당 충의사와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이 모여 있어요. 스물네 살 청년이 어떤 고향에서 무엇을 하다 상하이로 떠났는지 걸으며 따라가 볼 수 있어요.
농촌 계몽가에서 독립운동가로
윤봉길은 1908년 시량리의 도중도라는 작은 섬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11살에 덕산보통학교에 들어갔지만 일본인 교사에 반발해 이듬해 그만두었고, 한학을 배우며 스승에게 '매헌(梅軒)'이라는 호를 받았어요. 스무 살 무렵부터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직접 엮은 『농민독본』으로 농민들을 가르쳤으며, 1929년에는 농촌 발전을 위한 월진회를 만들었어요.
1930년 고향을 떠난 그는 상하이에서 김구가 이끈 한인애국단에 들어갔어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상하이사변 승리를 함께 기념하는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비롯한 일본 측 수뇌부를 죽거나 다치게 했어요.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일본으로 끌려가 같은 해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했어요. 나이는 만 24세였어요.
무엇을 볼까
- 광현당(생가): 도중도에 있는 초가로, 그가 태어난 집이에요. 도중도 일대는 2022~2024년 탐방로 보수 공사로 관람이 제한된 적이 있으니 현장 안내를 확인하세요.
- 저한당(성장가): '한국을 건져 내는 집'이라는 뜻의 이름이에요. 그가 4살이던 1911년 가족과 이사 와서 1930년 망명 전까지 살았고, 순국 뒤 광복 때까지 일제의 감시를 받았어요. 1972년 8월까지 유족이 살았어요.
- 부흥원: 야학과 농촌 부흥 운동의 거점이었던 초가예요. 처마 아래 '復興院' 현판을 찾아보세요.
- 충의사: 윤봉길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8년 세웠어요. 홍살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닿아요.
- 윤봉길의사기념관: 2001년 세운 기념관으로 보물로 지정된 유품 65점을 전시·보관하고 있어요. 의거 당일 아침 김구와 바꿔 찬 회중시계가 대표 유품이에요.
Tripto 팁
- 운영 시간: 3
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이고 끝나기 30분 전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 관람료는 무료예요. 휴관일은 안내 자료마다 다르니 방문 전 기념관(041-339-8238)에 확인하세요. - 소요 시간: 기념관 1시간, 유적지 전체 2시간 정도예요.
- 가는 길: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덕산스파 정류소까지 버스로 약 1시간 30분, 내려서 택시로 5분 또는 걸어서 20분이에요. 기차로는 영등포역에서 장항선 삽교역까지 약 1시간 55분, 이어서 501번·553번 등 버스로 약 40분이에요. 주차장(205대)은 무료예요.
- 추천 시기: 매년 4월 29일 무렵 의거를 기리는 매헌문화제가 열려요.
- 알아 둘 점: 유적지 전체가 금연 구역이고, 전시관에서는 플래시와 삼각대 촬영을 할 수 없어요. 가까운 덕산온천, 수덕사와 묶으면 하루 코스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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