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0 분
주요 볼거리
- 1949년 4월 5일이 라틴어로 새겨진 머릿돌
- 강원도에서 드문 1950년대 석조 고딕풍 성당
- 아일랜드 골롬반 선교회를 상징하는 청동 문 십자가
- 전쟁 중 희생된 신부들이 잠든 성직자 묘역
- 불탄 소나무와 북한 주목으로 만든 십자가
장소 소개
춘천 시내 약사리 고개 언덕 위에 선 회색 돌 성당이에요. 1949년 짓기 시작해 한국전쟁으로 부서졌다가 1956년 완공된 건물로,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을 잘 보여 줘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어요. 성당 뒤뜰에는 전쟁 중 북으로 끌려가 숨진 신부들이 잠든 성직자 묘역이 있어 짧은 방문에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스스로 싹튼 신앙에서 주교좌까지
춘천의 천주교는 선교사가 아니라 신자들 스스로 시작했어요. 《천주실의》 등을 읽고 신앙을 받아들인 엄주언이 중심이 된 곰실 공소가 1920년 본당으로 승격했고, 이것이 죽림동 성당의 시작이에요. 신자들은 가마니를 짜고 짚신을 삼아 판 돈으로 시내에 땅을 샀다고 해요.
1930년대 말 춘천 지역을 아일랜드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맡게 되면서, 주임 토머스 퀸란(구인란) 신부가 지금의 언덕 땅을 사들였어요. 1941년 새 성당 건축을 계획했지만 일제의 감시로 미뤄지다가, 해방 뒤 1949년 4월 5일에야 공사를 시작했어요. 성당 벽에는 그 날짜를 라틴어로 새긴 머릿돌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전쟁과 '죽음의 행진'
외벽을 다 쌓고 내부 공사를 하던 1950년 전쟁이 터졌어요. 1·4 후퇴 무렵 공습으로 벽 일부와 사제관이 부서졌고, 전쟁이 끝난 1953년 공사를 다시 시작해 1956년 완공했어요. 석재는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날라 왔다고 해요.
1950년 7월 춘천을 점령한 인민군은 퀸란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와 수녀들을 북으로 끌고 갔어요. 많은 이가 34개월의 포로 생활 중 숨졌고, 퀸란 신부는 살아 돌아와 1955년 초대 춘천 대목구장 주교가 됐어요. 이때 죽림동 성당도 주교좌성당이 됐어요.
성당에서 볼 것
- 석조 외관: 정면 가운데 종탑이 선 고딕풍 돌 건물이에요. 같은 시기 강원도의 풍수원·용소막 성당이 벽돌로 지어진 것과 달리 돌로 마감한 점이 특징이에요. 주 출입구 아치에는 십자가를 돋을새김한 이맛돌이 있어요.
- 청동 문의 십자가: 아일랜드풍 십자 문양이 새겨져 골롬반 선교회와의 인연을 보여 줘요.
- 내부: 기둥 없이 하나의 큰 강당처럼 트인 공간이에요. 1998년과 2006년 보수 때 가톨릭미술가회 작가들이 제대와 성물을 새로 만들었어요.
- 골롬반 선교회의 흔적: 1939년부터 30년 동안 11대에 걸쳐 골롬반 선교회 신부가 주임을 맡았어요. 성당 입구 쪽에는 선교회 수녀원이 있고, 언덕 아래에는 주민들이 '성당 병원'이라 부르는 성 골롬반 의원이 있어요.
- 성직자 묘역: 성당 뒤에 전쟁 중 희생된 외국인·한국인 신부들이 묻혀 있어요. 그 뒤편에는 동해안 산불에 탄 소나무에 북한의 주목을 엮어 만든 십자가가 서 있어요.
Tripto 팁
- 추천 시간: 성당 안팎과 묘역까지 30분~1시간이면 충분해요.
- 예절: 지금도 미사가 열리는 성당이에요. 미사 중에는 내부 관람과 사진 촬영을 삼가고, 조용히 둘러보세요.
- 교통: 주소는 춘천시 약사고개길 23이에요. 춘천역·남춘천역에서 모두 1.5km 안팎이라 택시로 5분 남짓, 걸어서는 20분 정도 걸려요. 명동 닭갈비 골목과 중앙시장이 가까워 시내 산책과 묶기 좋아요.
- 알아 두기: 춘천교구는 11월 첫 주간에 전쟁 중 희생된 사제들을 기리는 위령 행사를 이곳에서 열어 왔어요. 이 시기에는 묘역에 참배객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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