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90 분
주요 볼거리
-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높이 4.55m 국보 낭혜화상탑비
-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세 기 등 보물 석탑 네 기
- 구산선문 성주산문의 중심이었던 대찰의 가람 배치
- 성주산 골짜기에 둘러싸인 넓은 잔디 절터
- 성주산자연휴양림과 함께하는 보령 내륙 여행
장소 소개
보령 시내에서 동쪽으로 성주산 골짜기에 들어서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밭 위에 석탑 네 기가 나란히 서 있어요. 한때 신라 선종을 이끈 대찰 성주사의 터예요. 건물은 모두 사라졌지만, 신라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이 비문을 지은 국보 탑비가 남아 있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찾아올 만해요.
백제의 호국사찰에서 선종의 중심으로
성주사의 시작은 백제 때 세운 오합사예요.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나라의 사찰이었다고 하며, 백제가 무너진 뒤 한동안 폐허가 됐어요.
절을 다시 일으킨 사람은 무열왕의 8대손인 낭혜화상 무염이에요. 821년 왕자 김흔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선을 공부하고 845년에 돌아와 이 절에 머물렀고, 문성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렸어요. 성주사는 신라 말 선종의 아홉 산문인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성주산문의 중심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승려를 길러 낸 큰 산문이었다고 해요. 낭혜화상은 888년 89세로 이 절에서 입적했어요.
절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쇠퇴했고 17세기 말 문을 닫았어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여섯 차례 발굴로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늘어선 가람 배치와 삼천불전 터 등이 확인됐어요. 198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어요.
절터에서 볼 것
- 낭혜화상탑비(국보): 높이 4.55m로 통일신라 탑비 가운데 가장 커요. 최치원이 지은 비문은 5천 자가 넘는 긴 글로, 그가 쓴 네 편의 비문인 '사산비명' 가운데 하나예요. 낭혜화상 집안이 진골에서 6두품으로 낮아진 이야기가 적혀 있어 신라 골품제 연구 자료로도 중요해요. 받침돌의 거북은 머리에 둥근 뿔이 나 있고 등에 이중 육각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뒤엉켜 있고 앞면으로 용머리가 불쑥 튀어나와 있어요. 흙에 묻혀 부서져 있던 것을 1974년에 해체·보수했어요.
- 석탑 네 기(보물): 금당 앞의 오층석탑, 그 뒤로 나란히 선 서·중앙·동 삼층석탑이 모두 보물이에요. 한 절터에 탑 네 기가 이렇게 줄지어 선 모습은 흔치 않아요.
- 석등과 석불입상: 오층석탑 앞 석등과 비바람에 닳은 석불입상, 금당으로 오르던 돌계단도 남아 있어요.
Tripto 팁
- 소요 시간: 절터만 둘러보면 45분~1시간, 근처 성주사지 천년역사관(보령시 성주면 심원계곡로 93)까지 보면 1시간 30분 정도 잡으세요. 역사관을 먼저 둘러보고 절터로 나오면 잔디 위 석탑과 건물터의 배치를 이해하기 한결 쉬워요.
- 입장: 야외 절터라 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어요. 천년역사관의 운영 시간은 방문 전 보령시 안내로 확인하세요.
- 가는 법: 장항선 대천역이나 보령종합터미널에서 성주면 방면 버스가 있지만 횟수가 적어요. 자가용이나 택시가 편해요.
- 좋은 시기: 4월 말~5월 초 신록이 돋을 때 잔디와 석탑이 가장 잘 어울려요. 늦은 오후 햇살이 탑에 비스듬히 들 때 사진이 잘 나와요.
- 함께 가기: 성주산자연휴양림이 가깝고, 서쪽으로 대천해수욕장까지 차로 30분 안팎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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