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5 분
주요 볼거리
-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임득의 장군의 사당
- 1632년 창건, 1872년 재건한 건물
- 청룡산의 임득의 장군 묘와 1917년 신도비
- 가족 17명이 원종공신에 오른 평택 임씨 이야기
장소 소개
임진왜란 한복판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무신 **임득의(1558~1612)**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에요. 홍성 서부면 청룡산 자락에서 장군의 묘, 신도비와 함께 하나의 묘역을 이루고 있어, 공신 가문의 기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요.
임득의는 누구일까
임득의는 평택 임씨 출신의 조선 중기 무신이에요. 임진왜란이 길어지며 전쟁과 흉년에 지친 민심이 흔들리던 1596년(선조 29) 7월, 이몽학이 충청도 홍산(지금의 부여군 홍산면)에서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몰려왔어요. 임득의는 홍주목사 홍가신 등과 함께 성을 지키고 반란군을 진압했고, 그 공으로 청난공신 3등에 올라 평성군에 봉해졌어요. 이후 충청수우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냈어요.
이몽학의 난은 임진왜란 중 일어난 가장 큰 내란으로 꼽혀요. 반란군은 홍산을 시작으로 임천, 청양 등 충청도 고을을 잇달아 차지하며 세력을 키웠지만, 홍주성 공격에 실패하면서 무너졌고 이몽학은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었어요. 전쟁 중 나라 안에서 일어난 반란을 막아 낸 공이었기에 공신 책봉이 뒤따랐어요.
공은 집안 전체로 이어졌어요. 임득의가 공신이 되면서 형제와 조카 등 17명이 청난원종공신에 이름을 올려, 평택 임씨는 충청 지역의 이름난 가문이 됐어요.
사당과 묘역
사당 이름의 '정(靖)'은 어지러움을 가라앉힌다는 뜻의 글자로, 난을 평정한 장군의 공을 떠올리게 해요. 정충사는 1632년 처음 세웠고, 건물이 낡아 1872년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사당이에요. 2009년 10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고, 지금도 후손인 평택임씨 평성군파 문중이 관리해요.
사당 가까이 청룡산에는 임득의 장군의 묘가 있어요. 묘는 1995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따로 지정됐어요. 묘역 입구의 신도비는 1917년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구한말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김복한(1860~1924)이 지었어요. 사당과 묘, 비를 차례로 둘러보면 한 무관과 그 가문이 어떻게 기억되어 왔는지 자연스럽게 따라가 볼 수 있어요.
Tripto 팁
- 얼마나 걸릴까: 사당만 보면 20분, 묘와 신도비까지 둘러보면 40분 정도예요.
- 관람: 문중이 관리하는 사당이라 매표소나 안내소가 없어요. 사당 안은 늘 열려 있지 않을 수 있으니 담장 밖에서 건물과 묘역을 살펴본다고 생각하고 가세요.
- 가는 길: 주소는 홍성군 서부면 판교1길 40-1이에요. 대중교통이 불편해 자가용을 권하고, 홍성읍에서 차로 20분 남짓 걸려요.
- 이야기 이어 보기: 반란군을 막아 낸 홍주성은 지금 홍성읍 한가운데에 홍주읍성으로 남아 있어요. 정충사와 함께 들르면 1596년의 이야기가 한 줄로 이어져요.
- 함께 둘러보기: 결성읍성과 결성향교가 3km 안팎이고, 천수만 바닷가의 남당항이 약 5km 거리라 가을 대하, 봄 새조개철에 들러 식사까지 묶기 좋아요.
- 언제 가면 좋을까: 사당 주변 나무가 물드는 가을 풍경이 특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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