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0 분
주요 볼거리
- 남한 유일의 고구려 비석, 국보 충주 고구려비
- 높이 2.03m 화강암에 새긴 약 528자
- 1979년 입석마을에서 찾아낸 과정 전시
- 고구려 역사·생활·설화 전시실
- 무료 관람, 중앙탑사적공원과 약 2km
장소 소개
충주 중앙탑면의 충주고구려비전시관에는 남한에 하나뿐인 고구려 비석, 충주 고구려비(국보)가 서 있어요. 높이 2m 남짓한 돌 한 덩이지만, 5세기 무렵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까지 내려와 신라를 아래에 두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 주는 기록이에요. 입장료 없이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어서, 근처 중앙탑사적공원과 함께 들르기 좋아요.
마을 어귀의 돌이 국보가 되기까지
비석은 오랫동안 용전리 입석마을 어귀에 서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오래된 선돌이었고, 표면도 심하게 닳아 있었어요. 1979년 4월 단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이 조사하면서 고구려 비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1981년 국보로 지정됐어요. 같은 해 8월 비각을 세워 보호하다가, 2012년 7월 전시관이 문을 열면서 실내로 옮겼어요. 처음 이름은 '중원 고구려비'였는데, 2010년 12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어요.
비석에 새겨진 것
- 크기와 재료: 높이 2.03m, 너비 55cm, 두께 33cm의 화강암이에요. 자연석을 거의 다듬지 않고 그대로 비석으로 썼어요.
- 글자: 예서체로 약 528자가 새겨져 있지만 닳은 곳이 많아 다 읽을 수는 없어요.
- 읽히는 말: '고려태왕(高麗太王)', 신라 왕을 가리키는 '신라 매금(寐錦)', '태자 공(太子 共)' 같은 낱말이 보여요.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라는 구절은 고구려 군대가 신라 땅 안에 머물렀다는 뜻으로 풀이돼요.
- 세운 때: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으로 영토를 넓힌 5세기 후반이라는 견해가 많아요. 다만 5세기 초 광개토왕 때부터 6세기까지 의견이 갈리고, 2019년에는 '영락 7년(397년)'으로 읽히는 글자가 있다는 연구도 나왔어요.
전시관에서 볼 것
비석은 전시관 가운데에 조명을 받으며 서 있고,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여러 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요. 둘레 전시실은 고구려의 역사와 생활, 설화를 소개하고, 안악 3호분과 광개토대왕비 같은 고구려의 대표 유적, 그리고 충주 고구려비를 찾아낸 과정을 보여 줘요. 충주는 남한강 물길과 고갯길을 함께 쥔 요충지였고, 고구려는 이곳을 70년 넘게 다스린 것으로 보여요.
왜 충주였을까
충주는 남한강 물길과 한반도 중부를 넘는 고갯길이 만나는 곳이었어요. 고구려는 이곳을 국원성이라 부르며 남쪽 진출의 거점으로 삼았고, 6세기에 신라가 이 땅을 차지한 뒤에는 국원소경, 뒤에 중원경을 두었어요. 2006년 충주시가 세계유산 등재를 염두에 두고 '국원 고구려비'라는 이름을 제안했던 것도 이 역사 때문이에요. 비석 하나에 삼국이 한강 유역을 두고 다투던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에요.
Tripto 팁
- 운영 시간: 09:00~18:00이에요.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은 쉬어요.
- 관람료: 무료예요. 한국어 해설을 들을 수 있어요.
- 소요 시간: 30분~1시간이면 충분해요.
- 함께 보기: 남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중앙탑사적공원에는 통일신라의 탑평리 칠층석탑이 남한강 가에 서 있어요. 고구려와 신라가 번갈아 차지했던 땅이라 두 곳을 묶어 보면 이야기가 이어져요.
- 가는 길: 주소는 충주시 중앙탑면 감노로 2319예요. 충주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20분 안팎이에요.
- 관람 요령: 글자가 얕게 남아 있어 정면보다 비스듬히 비치는 조명 쪽에서 볼 때 획이 더 잘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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