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시간
주요 볼거리
-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전해지는 2008년 지정 명승
- 1592년 신립 장군의 이야기가 남은 열두대 절벽
- 탄금정 아래로 펼쳐지는 남한강과 강 가운데 섬
- 강을 따라 걷는 솔숲 산책로와 권태응 감자꽃 시비
- 남한강·새재 자전거길이 만나는 탄금대 인증센터
장소 소개
충주 시내 서쪽,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에 솔숲으로 덮인 낮은 산이 강을 향해 절벽으로 끊겨 있어요.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탄금대(彈琴臺)'라는 이름이 붙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의 조선군이 무너진 비극의 현장이기도 해요. 음악과 전쟁의 기억이 한 언덕에 겹쳐 있는 국가지정 명승이에요.
가야금 소리가 남은 언덕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이라 불리던 야산이에요. 신라 진흥왕 때 가야에서 건너온 우륵이 이곳 강가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전해지면서 '악기를 타던 대'라는 뜻의 이름을 얻었어요. 우륵은 박연,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혀요. 굽이치는 남한강과 기암절벽, 울창한 소나무 숲이 어우러진 경관을 인정받아 2008년 7월 9일 국가지정 명승이 됐고, 지정 면적은 **289,492㎡**예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가야의 가실왕이 가야금을 만들고 우륵에게 곡을 짓게 했는데, 가야가 기울자 우륵은 신라로 건너왔어요. 진흥왕은 그를 국원, 곧 지금의 충주에 머물게 하고 계고, 법지, 만덕 세 사람을 보내 노래와 춤, 가야금을 배우게 했어요. 가야의 음악이 신라의 궁중 음악으로 이어진 출발점이 바로 이 강가였던 셈이에요. 충주에서는 지금도 우륵의 이름을 딴 우륵문화제가 열려요.
신립과 열두대
1592년 부산과 동래가 무너지고 일본군이 북상하자, 선조는 당대 최고의 장수로 꼽히던 신립을 삼도순변사로 내려보냈어요. 종사관 김여물은 험한 문경새재에서 적을 막자고 했지만, 신립은 기병이 강한 조선군이 보병 위주의 일본군을 넓은 들에서 상대하는 편이 낫다고 보고 충주 달천 평야를 싸움터로 골랐어요. 병력은 《징비록》에 8천 명으로 적혀 있는 등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요. 그러나 음력 4월 28일(양력 6월 7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조선군을 에워싸면서 조선군은 거의 전멸했고, 신립은 강가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고 전해져요. 이 패배로 한양으로 가는 길이 사실상 열렸어요. 탄금대 뒤편 강 쪽 낭떠러지는 열두대라고 불러요. 신립이 싸움 중에 뜨거워진 활시위를 강물에 식히고 병사들을 다독이려 이 벼랑을 열두 번 오르내렸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이름이에요.
언덕에서 찾아볼 것
- 탄금정과 열두대: 언덕 위 정자 탄금정 아래로 열두대 절벽이 이어져요. 이곳에서 남한강 줄기와 강 가운데 섬, 건너편 산자락이 넓게 내려다보여요.
- 솔숲 산책로: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 데크와 흙길이 이어져, 소나무 사이로 강물을 보며 걸을 수 있어요.
- 감자꽃 시비: 칠금동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짧은 동시에 담은 아동문학가 권태응의 시비가 있어요.
- 탄금호: 하류에 조정지댐이 생기면서 강이 넓은 호수처럼 펼쳐졌고, 그 위로 다리들이 가로질러요.
Tripto 팁
- 가는 길: 충주역에서 직선으로 약 1.6km 떨어져 있어 택시로 금방이에요. 주소는 충주시 탄금대안길 105예요.
- 운영: 24시간 열려 있고 입장료가 없어요. 주차장이 있어요.
- 시간: 열두대와 탄금정까지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1시간 30분이면 충분해요.
- 언제 갈까: 솔숲이 시원한 여름 아침과 강가 단풍이 드는 가을이 좋아요. 강물이 햇빛에 반짝이는 오후 늦게 열두대에 서 보세요.
- 자전거 여행자라면: 근처에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탄금대 인증센터가 있어요. 팔당댐에서 오는 남한강 자전거길이 여기서 끝나고, 문경새재로 넘어가는 새재 자전거길이 시작돼요.
- 주의: 열두대 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니 난간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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